take1-1 여전히 존재하는가?
잘 있는가? 여전히 그 자리에 그렇게 살긴 하니?
존재하는 것들과 사라지는 것들, 혹은 애초에 존재 조차 하지 않았던 것들. 그렇게 많은 쓰레기 더미 속에서 진짜는 살아 있을 텐데...
그런데 내가 그 더미에서 끝끝내 발견했다고 자랑스럽게 여기던 것들이 사실은 허상이면 어쩌지?
어쩌긴. 이미 겪었지 그런 허상 쯤은. 나는 허상을 봤어.
허상이 어떻게 보이냐고? 우리는 허상을 볼 수 있어. 내가 무언갈 집어 올렸을 때 우리 마음 속에서는 그게 허상이라는 생김새로 존재한다는 걸 느끼잖어. 그러니까, 내 손에서는 존재하지 않지만 내 눈에서는 잠깐 스쳐 지나갔던 거지. 그렇게 저 안에 있던 내 눈으로 본거야 나는. 그 존재를 말이야. 그러니까, 무존재의 존재를.
그럼 아프지 않아? 내가 만질 수 있고 사랑했던 것들이 스쳐갈 때 말이야.
아프지. 어떻게 아프지 않을 수 있겠어. 근데, 그 아픔도 사실은 허상이야. 말하자면 잠재적 허상인거지. 곧 다른 것들 처럼 허상이라는 존재로 변주될 거니까. 그래서 사는 거야 사람들이.
봐. 지금 너랑 나도 그 비통의 세월을 겪었지만 이렇게 눈을 마주하잖아. 얘기하고 있잖아. 사실 우리도 허상이 될텐데 말이야. 다 죽을 거야. 모든 것이 우리가 지나온 것들처럼 사라질 거야. 지금 우리 조차도 그렇잖아.
그렇네.
그럼 넌 존재에 의미를 두지 않는거야? 그런거니?
의미를 두지 않다니. 의미가 뭔데? 중하게 여기는 거, 그러니까 소중하게 사랑하는 거. 그게 의미니? 그게 왜 영속되어야 하는데? 존재가 계속되어야만 우리가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지금도 지나가고 있는 이 말들, 아무 것도 아닌 단어들도 의미야. 사랑은 하는 거지, 남기는 게 아니잖아. 남겨서 뭐할 건데. 너 그렇게 힘들게 죽쒀서 누구 줄래. 결국 너도 사라질 텐데.
그러니까 그냥 마음껏 사랑해. 그게 그 자리에 여전히 있는지, 미래에 있을 건지 불안해 하지도 말고 지금 이 존재를 사랑하면 되는 거야. 죽는 것에 의미를 둘 필요도 없어. 죽음도 지나가는 거야. 모든 건 지나가는 거야. 지나오고 있고.
그러니까.. 난 존재를 누구보다 의미해. 의미를 두는 거야. 사라질 것에 '어차피'를 붙이는 게 아니야. 그게 아니고. 어어, 그건 아니야. 그게 아니라 '어쨌든', 사라지는 거야. 그 다음에는 반전어를 붙이면 돼. 그래서 어쩔 거냐고.
어쩌자는 건 아니지.
응 그래. 우리 이거 좀 더 먹을까? 아니면 나가서 좀 걸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