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는 증오가 되기도 한다
지금 내가 사는 동네에는 산책길이 여러 갈래 나눠져 있다. 한 곳은 밝은 곳, 트랙이 빨간 것이 예쁘고, 다른 한 곳은 어둡고 나무가 많다. 한동안 나의 길은 후자였는데, 적당히 쓸쓸하고 비밀스럽기도 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산책이 습관으로 자리 잡을 그 무렵 어느 늦겨울이었나 보다. 혼자 걷는 그 길에 밤이 늦어 괜히 무섭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걸 적당한 핑계 삼아 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 그 정도의 핑계라면 그다지 억지스럽지도 않을뿐더러 얘기할 거리가 될 거라는 생각도 했다. 또 아주 적당히 술에 취한 듯했던 너와 짧은 대화를 나눴고, 나는 이 길의 제멋대로인 가로등에 대해 말했다. 사람이 지나가지도 않았는데 여기서 반짝, 또 그러다가 내가 지나가면 몇 초 늦게 반짝. 아주 제대로 지멋대로인 건방진 놈. 그래도 한 번도 그것에 대해 무섭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는데. 이곳에 대해 꽤나 잘 아는 듯했던 너에게서 꽤나 빅이슈가 될 것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거기에는 귀신이 있대. 옛날에 전쟁이 나 죽은 사람들을 많이 묻어 둔 곳이래. 그래서 나도 거기로는 잘 안 가. 귀신이고 나발이고 나는 인간이 더 무섭다고 늘 생각해왔던 사람이었는데, 그날 들은 이야기는 며칠이 지나도록 남았다. 대충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당신의 이제는 익숙한 습성과 함께 전화는 끊겼고, 그 대신 이어폰 볼륨을 가득 올렸더랬다. 어느 새에 5월이다. 5월도 반이 지났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가지 않은 곳. 나는 귀신인지 너인지 영문 모를 이유로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았고, 그에 대한 생각도 점점 잊어갔다. 오늘은 어떤 연유 따위 없이 홀로 그곳에 갔는데, 여전히 멍청하게 깜빡이는 불빛이 그 자리에 있었고, 나는 무서웠다. 전에는 느끼지 않았던 공포 비슷한 걸 느껴서 그 길로 나는 귀신에 대해 생각했는데, 날 보고 쫓아오는가? 라는 생각도, 했다. 어머어머, 저 어린양 좀 봐라. 겁도 없이 여기에 혼자 왔네. 귀에는 이상한 걸 끼고 있네? 한 번 가 보자! 어구 어구.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빠른 걸음으로 다시 유턴. 곧장 빠져나오다 나는 불쌍한 그들이 왜 증오의 대상이 되었는가 생각했다.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웃기지만. 불쌍하게 간 사람들은 불쌍하게 묻혀 불쌍하게도 증오를 받고. 사람들은 무서워서 미워한다. 무서워서 욕을 하고, 무섭기에 죽인다, 죽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무서운 건 어쩔 수 없고 싫어하지는 말자고, 그렇게 생각했다. 발상의 방향이 너무나 우스꽝스럽긴 하나, 어쨌든.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 거니까. 내가 너를 대하는 것도 꽤나 두렵고 무섭긴 하나, 사랑하는 마음을 증오로 바꾸지도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밤. 그렇게 적당한 공포와 예쁜 마음이 섞여 있는 밤. 동시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밍밍한 밤들. 이건 그저 너를 향하는 나의 월간 수신호. 별 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