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사유思惟

그 무엇도 아닌 존재의 처연함

Heewon Eom 2021. 11. 4. 23:30

근래에는 수없이 많은 생각을 장소불문하고 한다. 복잡다사한 허구의 삶에서 더 복잡한 회로로 머리를 굴리니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다. 오늘 생각한 것들 가운데 중 하나는 사랑의 정형화에 관한 것. 우리가 형광등에 익숙해져 빛에 대한 다른 취향을 굳이 갖지 않는 것처럼, 사랑이라는 감정을 하나의 정해진 모습으로 익숙케 했던 것이 나의 과오는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떤 형태로든 얼굴 앞에서 나도 모르는 새에 눈빛이 따뜻해지는 것, 말의 꼬리를 물고 무는 대화로 끝도 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 내가 아는 정보를, 또 당신이 아는 정보를 본능적으로 나누고 흡수하게 되는 것. 굳이 풀어 말하자면 내가 느끼는 사랑의 척도는 이 정도 쯤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에 있어 마음의 부력을 필요이상으로 느끼는 것에 의문과 반감을 가질 때 쯤, 나는 이내 그 모든 것이 결국 내 육체 안의 나로부터 만들어진 허상임을 알았다. 그 마음을 깨닫고 나면, 지금 조물주가 만들어 놓은 숱한 무의미의 행위로부터의 피곤함을 느끼지 않고 정말로 가여운 마음으로 나와 같은 누군가의 존재를 사랑할 수 있다. 결국에 우리 모두 같은 처지에 놓인 하나의 조각들 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그 처연함을 매개로 손의 촉감을 느끼며 온기를 공유할 뿐이다. 결국,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라는 존재를 사랑하기 시작한다는 것, 영영 마주할 수 없을 지도 모르는 내 진짜 존재를 눈맞춤하게 하는 터널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숱하게 흔들리는 마음이라는 파편에 동요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서, 나는 오늘도 그 불순물을 게워내려 이런저런 자동화된 행위들을 한다. 신의 모습을 흉내내려 아둥바둥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어쩌면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은, 내 존재의 조각성을 깨닫고, 그 최종 목적인 무의 상태를 위해 계속되는 정보수집의 반복이 아닐까. 스스로가 한참 부족하다는 결론이 계속해서 마침표를 찍으려는 현재의 나는 그 악마같은 부름을 결코 쳐낼 수는 없지만, 그 부족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기 위해 현재를 보내는 것이 가장 정답이라고 오늘도 다만 생각해보는 거다.

호흡을 크게 들이쉬고, 또 내쉬고. 다시 한 번 우리 눈 앞의 모든 것은 꿈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것만이 나의 힘이자, 존재의 이유이고, 현재 가장 근접한 세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