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사유思惟

내 천직은 무얼까나

Heewon Eom 2021. 11. 16. 03:06

생각하건대 모든 인간에겐 맞춤옷처럼 딱 맞는 일이 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생각하건대 나는 조선시대에 한량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서도 머리 굴리는 건 차마 버리지 못해서 정신이 흐물거리는 육신을 되잡아 고통스레하는 인간이었을 게다.

하아. 5-6시간 동안 서 있어야 하는 알바를 시작했는데 이거 원 육신이 고통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에는 분명 재밌을 거라고 또 신기한 일이 생길 거라는 이유였건만. 되짚어보면 또 머리로만 상황 판단하는 고질적인 실수였던 거다. 이제는 반대로 육신이 피로해 정신까지 머릿채 잡혀 피폐해진다.

집에 오는 버스에서 멍 때리면서 생각하기를, 인간은 역시 반대급부를 겪어봐야 좋았던 건 줄 안다고. 조금은 지루하고 평온했던 내 저녁 시간이 잔치 속 쥐새끼가 된 마냥 외롭고 처량하다고 느꼈었으나, 막상 잔치라고 내려와보니 몸을 마구자비 움직이는 그들도 여간 피로한 게 아니었구나 하는 거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로 생각회로는 틀어질 수밖에 없는데, 일단 장시간 서 있는 일은 절대 사절. 내 옷은 아니다. 그리고 시간이 시급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의 문제로 귀결되는 일이어야 한다(고뇌운동이 불요한 단순 서비스 노동을 몇 시간 하며 계속 생각하길, 이 시간이었으면 나는 뭘 더 할 수 있었을까, 시간이 아까울 지도?). 머리 굴려먹는 것도 여간 고통스러운 일 아니라는 바 잘 알지만 고통의 크기에 견준다면 앉아서 생각하고, 쓰고, 토론하는 것이야 말로 호화스러운 신성노동이다. 결론으로는 많은 생각을 요하는 일, 과정의 미로 끝에 답이 필시 있는 일, 끝없는 지식의 축적을 필요로 하는 일. 요 조건들에 맞는 일들을 계속 찾아볼 수밖에.

하여간 이미 벌인 일이니 어느 만큼의 시간은 내어줘야 겠다고 생각 중이다. 그리고 좌우당간 배울 것도 아예 없을 것 같지는 않다. 최대 고민 중 하나인 인간 상대법도 배울 수 있을 것 같고… 더불어서는 와인 안주 레시피도……

뭔들 무익만하랴. 이왕에 결정한 김에 즐겁고 배우는 자세로 임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