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란 무얼까?
광화문 직장인으로 경험하길 보름 하고도 며칠 더 지났다. 첫 주 이틀은 새로운 삶 맞이하는 산뜻한 기분으로 맞았고, 어김없이 익숙해져 이제는 내가 하는 노동이 나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 지를 고민해본다. 겉만 보면 번듯한 일자리를 가진 인간으로 자리하겠지만서도, 스스로 하나도 즐기고 있지 않은 걸 볼 때면 나에게는 맞지 않는 직종이란 것을 느낀다.
내가 하는 일은 회사 말단 사원으로서 파일 마감작업, 번역작업, 분류작업 정도이다. 몇달 전부터 재보험이라는 분야에 흥미를 느끼다 간접적으로나마 그것들을 중개하는 일을 지켜보고 있다만 사실 기대하던 업무와는 정말 다르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사무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느꼈다. 어떤 일이든 힘들지 않은 일 없겠다만, 오히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나에게는 아무런 자극도 되지 않는 단순 작업처럼만 느껴진다. 그저 학교에서 주는 정해진 분량의 숙제를 최대한 빨리 해치워 전달하는 것 같다. 오늘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그간 내가 학교에서 하던 과제와 지금 회사에서 하는 일종의 숙제를 비교해봤다. 굳이 그것들의 차이점을 집어내자면 사유의 유무이겠다. 과제는 단순히 빨리 해치워야하는 시간의 흐름이 아니다. 스스로 던져진 주제에 대해 생각하고, 자발적으로 정하며, 여러가지를 찾아보면서 교수님의 피드백을 받는다. 나는 그 순간이 가장 기대된다. 내가 얼마만큼의 값어치를 하는지 대충 알아챌 수 있고 스스로의 가치를 키울 방향이 보이기 때문.
반면 여기에서 하는 업무는 어려운 과정이 전혀 없다. 또한 이것을 통해 내가 뭘 배울 수 있는지 다가오지 않고, 나를 포함해 같이 일하는 동료직원들이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정말 일을 해치우는 기계들처럼 보인다. 전자상으로라도 누군가와 상호작용하며 무언가를 꾸려내고 있다고는 하지만, 정말로 인간의 모습을 한 것은 대표이사 혹은 명예회장 밖에 없을 뿐, 직원들은 전부 그의 몸뚱아리 한 부분으로서만 가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에야말로 이 사실이 보인 후에 정말로 나는 이 업계에서 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매일 아침 일찍 뻑뻑한 눈을 비비며 매일 같이 가야만 하는 공간에 가기 싫다고 늘 생각하며, 퇴근 후 저녁만을 바라보고, 막상 퇴근을 하면 지친 몸에 못이겨 아무런 생산도 할 수 없는 삶을 나는 아마 견뎌낼 수 없으리라 절감한다. 그렇게 살다보면 나는 저열하고 작은 쾌락에만 집중하며 아름다운 신체 다 버리는 슬픈 모습을 한 중년이 되어 있을 것만 같다. 열심히 일하는 누군가를 힐난할 의도 전혀 없고, 다만 나에게는 맞지 않을 삶이라 생각할 뿐이다. 약속한 2월의 겨울을 다 보내고 난 후, 나는 내가 가려고 했던 길에 더 열심히 임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는 어차피 직장이라는 곳에서는 행복을 찾을 수 없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곳을 이런 마음가짐으로 다닐 수는 없을 것 같다. 정말 일말의 퍼센테이지라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보람을 느끼며, 어느 정도 자아의 여유가 있는 일이 아니면 살 수 없다. 법을 공부하며 현대미술을 여전히 잃지 못하고, 근대문학의 건조한 담백함을 향유하지 아니할 수 없는 내가 맞는 직업을 내가 스스로 만들어야만 하겠다. 계획도 있고, 적어도 사회초년생으로서 이쪽을 벗어나는 편이 내 행복과 더 가까운 길이겠다 확신한다.
결론으로는, 이번 겨울방학은 나에게 보다 명확한 길을 제시해준 거다. 고마운 시간이고 혹여 그리워할 지도 모를 시간이니 오늘처럼 어두운 마음으로 임하지 말아야겠다 다짐해본다. 건강하지 않은 음식을 주워먹지 말고 과일을 깎아다 먹고, 커피는 하루 두 잔 이상 마시지 아니하며, 되도록 내가 내린 연한 커피를 먹어야겠다. 운동도 빼먹지 않으며 아침 시간을 즐길 수 있게 여유를 둬야겠다. 그것이 마음의 것이든 물리적 시간이든. 어쨌거나 시간은 흐르고 어제는 입춘을 맞이했으며, 나는 나의 정상 궤도를 다시 찾을 시간이다. 그리고 또 다시 어쨌거나 많은 성장이 내 안에서 느껴지므로 이 시간을 담담히 맞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