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사유思惟
역사 속에서
Heewon Eom
2022. 3. 31. 22:43

지난 날 역사 속을 들여다 본 기분.
국문학과 한시숙이라는 자는 1월에 옛 시집을 들여다보고는 9월에 다시금 생각이 났는지 같은 시집을 빌렸다.
세월 맞아 누렇게 바랜 종이는 어쩜 이리 서걱서걱 깊은 소리 내는지, 책장을 넘기는 손 끝에 시간이 느껴진다.
어떤 연유로 이곳에 왔는지 모를 책 183979.
83학번이라면 우리 부모님보다 조금 더 윗세대였을 텐데 같은 자리 밟고서 깨끗한 새 책 페이지 넘기며 대출기록을 수기로 작성했을 것 생각하니 어쩐지 신비롭고 귀엽다.
그래. 그간 전염병 따위에 밀려 학교라는 공간에 소홀했다. 어쨌거나 누릴 수 있는 이점이 한시적으로만 있는데 그걸 이용할 생각을 못 했다. 아쉬운 구간이다. 권희철 평론가 말을 빌리자면 인생이 주는 짓궂은 농담 따위도 전부 존재하지 않는 허구일 테니 무얼 하고 어딘가를 감에 있어 주저할 필요가 없다. 지나간 허상을 시간의 가치라 여기며 미래를 투영하는 자세가 어쩌면 그간 나를 꽤나 많이 막았나 싶다. 막힌 채로 늘 긴장되는 마음가짐 버리지 못 하고 세상을 기어다녔다고 밖에는.
국문학과 83학번 한시숙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관해.
짓궂은 농담 따위가 어느 길로 이끌었는지에 대한 보잘 것 없는 궁금증에 관해 골똘히 생각해보는, 그런 목요일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