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사유思惟

시력이 많이 떨어져 좋은 점

Heewon Eom 2022. 8. 8. 22:37

 

 

 

올해 들어 시력이 많이 나빠졌다. 남들 다 안경 쓰기 시작할 때도 좋은 시력 가졌다고 은근하게 자부하며 살았었다. 어른이 될수록 어찌 된 일인지 화면을 볼 시간이 는다. 그래서 안 좋아졌다. 크게 교양 없이 살게 되어서 그런가. 대단한 영화를 보면서 나빠진 것도 아니니까.

당연히 전보다 불편하기는 하다만 나쁘지만은 않다. 세상이 좀 더 아름답게 보인다. 예컨대 오늘 같이 비가 많이 내려 버스 창문이 희뿌얘질 때 바라보던 창밖의 풍경. 매번 내리는 윤동주문학관 앞에 못 보던 조각이 하나 있었다. 큰 곰의 뒷모습 같기도 한 것이 실제 사람 크키만 하기에 저 뜬금없는 물체를 나도 모르게 감상하고 있다. 멍을 때리다 급하게 내렸는데 그냥 엄청 큰 나무 밑동 두 개가 눈사람처럼 겹쳐있다. 스스로의 시선에 풉하고 웃는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우산으로 막으며 걸어가는데, 가슴 어딘가에서 작게 웃겼다. 폐 쪽이었나 보다. 그냥 그쪽이었으면 한다.

엄청나게 아름답지는 않은 세상을 덜 선명하게 보라고 시력이 나빠져 주었나. 어쨌든 한 살 먹어갈수록 세상은 그다지 크지도, 아름답지도, 활기 넘치지도 않다는 걸 알게 되어서. 그래서 생존장치를 이렇게 주나 보다, 하고 생각한다. 

 

내일은 또 무얼 잘못 보게 될지?

진심으로 기대되지는 않지만, 억지로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