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사유思惟

10월 30일 월요일

Heewon Eom 2023. 10. 31. 00:51

오랜만에 일기라는 것을 쓴다. 시간이 쏜살같다. 나는 예전처럼, 늘과 같이 많은 것들을 구상하지만 종이 위 밑그림에 그칠 뿐이다.

그간 많은 일이 있었다. 심적으로 아주 지칠 만한 일들. 멀리 바라보면 달라진 것은 그다지 없으나 최근 몇 달간 스스로의 병을 인지하고 있는 중이다. 아픈 마음을 녹여내고 외면하며 살아왔던 올해에 나에게 곪았던 염증이 찾아왔다. 어느 날 툭, 하고 그냥 터지면서. 지금까지도 숨 쉬는 것이 어렵다. 뭐랄까, 내가 가지고 있는 폐의 60%만 사용하고 있는 기분이다. 그 기분이 답답한 시기는 지났고, 나는 태생에서부터 이래왔던 인간처럼 살아가고 있다.

이젠 내게 벌어진 일을 만담처럼 쏟아내며 가엾음과 진심어린 위로를 받는 게 그닥 감흥이 없다. 가끔은 오히려 확인사살 받는 것 같다 더 언짢아질 뿐이다. 자기연민도 하고 싶지 않고 우울이 표창이라도 되는 냥 굴고 싶지도 않다. 그렇지만 비밀을 만드는 건 정말 꺼림칙한 일이라서 어쩔 방도가 없고 나는 내 수순을 밟고 있을 뿐이다.

중간고사를 지나쳤다. 학생 신분으로 있을 날이 한 달 하고도 반 정도 밖에는 남지 않았단 뜻인데, 오늘은 지영이와 커피를 사러 가는 길에 아쉽다는 소리를 했다. 아쉬움과 미련, 후회는 내가 가장 경계하는 감정인데 늘 떨치지 못하고 언제건 다른 모습으로 나와 함께한다.

몇 주 전 은영이에게 현재 상태를 말하니 그냥 일기나 써보라고 했다. 일기는 생각보다 마음을 정리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우울하지 않을 수 있는 좋은 창구이다.

어쨌든 이렇게 월요일이 시작되고, 또 쏜살같이 간다. 눈 앞에 해야지 다짐한 것들이 충혈된 눈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하루는 자고 일어나 샤워만 하기에도 바쁘다. 내가 제일 많은 시간을 쓰는 건 유튜브일 것이다. 이 놈의 것을 미워하면서도 독서를 한다거나 영화를 트는 것보다 아무 생각 없이 쉬는 느낌을 줘서 쉽게 끊을 수가 없다. 미국 큰아버지 댁에 몸이 푹 하고 들어가버리는 소파같다. 밥을 먹었든 안 먹었든, 간밤에 충분한 수면이 있었든 없었든 간에 잠으로 빨아들인다. 가끔 유튜브에 무방비로 맞설 때면 우울한 가정사를 지낸 기구한 여배우 내지는 할렘의 현실 모습 따위에 노출되어 급격히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미국 블랙홀 소파나 유튜브나 벌거벗고서 전장에 보내지는 각오를 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현재하는 불안이 어느 상황에서건 뇌에 똬리를 틀지만,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에 골머리를 썩이던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와 미련 따위는 사라졌다. 어느 쪽이든 병인 것은 매한가지다, 이 역시도.

이렇게 어둑해진 창을 보고 있자니 또 이번 주도 가버리겠지 하는 생각에 시간의 무게를 경시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참 별 것 아닌 것이 한 인간에 야속한 마음을 선물하는구나 생각한다.

시간의 흐름에 기대는 미래의 희망과, 다가오는 근미래에 대한 불안이 상존하면서 있다. 그렇게 몇 달을 살고, 전기장판을 설치한 지는 일주가 넘었다. 다시 걷히겠지. 생각보다 빠른 시일 내에.

오늘 저녁 산책을 하면서 종범이와 통화를 하다가 죽기위해서 열심히 산다라는 말을 했다. 나는 퍽 열심히라 생각 들지 않은 것 보니 아직 죽고 싶지는 않은가 보다 하고 동시에 생각 들어 기뻤다. 나는 걔가 부럽다. 순수한 사랑을 하고 있는 주위 몇 안 되는 사람이다.

이웃집 아주머니, 아니 선생님 즈음으로 부르고 싶은 분과의 이야기가 며칠 간 뇌리에 떠다닌다. 별 이야기 아닌 것이 솔직하고 따뜻해서 간만에 위로를 받았다.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일은 화요일이다. 되도록이면 이렇게 일기를 적는 일은 소홀히 하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