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사유思惟

Haute Couture

Heewon Eom 2020. 9. 24. 02:38

노동에는 개개의 가치라는 것이 있다. 뭐, 명시적으로 가장 쉽게 환산할 수 있는 것이 ‘돈’이니, 가치를 돈에 대입하여 말하겠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 하지만 노동마다 그 값은 다르다고 생각. 그렇다고 어떤 것은 우등하고 다른 하나는 열등하다는 것이 아니다. 높은 값을 갖는 노동은 그만큼의 시간, 인력, 고뇌, 체력이 투자된다. 그리고 그것은 한 사람의 생을 갉아먹을 만큼 힘들고 그래서 대단한 것이고 그래서 고귀한 노동이다.

수백,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쿠튀르 의상들의 값에는 너무나도 복잡한 시스템 속 여러 사람들, 그리고 그 조직의 값, 개개인의 땀 값, 밤을 지새워가며 손으로 바느질한 값,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수정할 것을 체크하며 잠을 설친 값,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부터 수석 프리미어, 하단 디자이너들, 디렉터, 포토그래퍼, 모델, 심지어는 쇼장의 가이드까지 그 수많은 사람과 장소, 시간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을 갈아내서 한땀 한땀 만든다, 그리고 그게 세상에 단 하나다. 단 하나의 피스를 위해 그 많은 사람들이 밤을 샌다. 그러니 그 값이 납득되지 않나?
유명 디자이너의 죽음에 오열하고, 죽어있는 물체를 찬양하는 일련의 모든 행위들이 이제는 이해가 되지 않나?

자, 그럼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당신은 그만큼의 가치를 가진 노동을 하고 있나?
당신의 일이 지금 당장 자신의 최선이라면 그것은 타고난 것이니 왈가왈부할 수 없겠지만, 당신은 더 달려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디테일에 접근하려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저 설렁설렁 떼우는 것이 전부라면?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의 임금에 대해 반대의 사람들과 대조해 차별이니 귀천이니 하등 주장할 수도 없다.

너라는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너의 최대 출력을 뽑아보아라. 노동의 가치와 그것이 주는 존재가치를 느껴보아라.

자.. 나, 나는 내 임금 만큼의 노동을 하는 중이다(물론, 사회적으로 보편 기준이 되는 임금이 인간 보편의 노동의 질과 비례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조절되어야 할 것이나, 내가 역설하는 것은 한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관한 임금에 관한 것이니 전자의 문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