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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사유思惟

만나요. 갈까요?

Heewon Eom 2022. 9. 13. 23:47

거처를 옮겨보는 건 어때? 아무래도 너는 이 공간에서 모든 걸 다 빨아먹은 것 같아. 그래서 더 이상 영감이, 망할 놈의 영감탱이는 한 마리도 안 보이는 거야. 너, 너 다른 곳에 갔을 땐 어땠어? 글은 잘 써졌어? 지금처럼 그냥 앉아서, 앉은 다음에 주제를 생각하는 멍청한 짓은 안 했어? 있잖아, 이건 내 경험인데. 주제넘을지 모르지만, 뭐 어때. 처음 새로운 곳에 살게 됐을 땐 활기가 넘쳤어. 이별이고 우울이고 하는 성스러운 글은 못 썼어도 글에 젊음은 있었다. 그게 딱 1년 안 가대. 두 남자와 이별을 하고 나니 성스러움이 돌아오나 싶었지만 열 쪽 안 되는 시집이라도 없으면 같은 글만 반복했어. 멍청하게. 느꼈지. 그게 딱 이곳 시간의 한도인가 보다. 더 이상 얻을 것이 없구나. 존경하는 이승우도 김승일도 연인을 차고 나면 글이 잘 써진다는데, 김승일은 마흔두 편이나 썼다는데. 참 나. 너도 그런 거 아닐까? 당연히 네가 발가락도 하나 없는 새도 아니고, 알지, 알지. 그런 의미가 아니라. 옮긴다는 건 도망친다는 의미만 있는 게 아니야. 도망이라기보다 가(앞 방향으로 끝없이 찾아 떠나는)는 거지. 에이, 내가 언제 가볍게 이야기하는 거 봤냐. 잘 생각해 봐. 어쨌든. 할머니가 그랬는데 영감은 찾아다니는 거래. 익숙한 곳에서 기다리기에 넌 너무 어려. 어리고 헤프고 예쁘잖아. 데이터가 중요하지. 아무튼. 생각 많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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