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이십사 시간 내내 멀미가 난다.속이 울렁이고 눈빛의 초점이 자꾸 나간다. 이럴 때마다 뇌 속 시각을 관장하는 신경 고리가 자꾸 두 눈의 짝을 못 찾고 헤매이는 것처럼 느껴져. 배가 아플까 하여 쉽게 무언갈 섭취하기 어렵다. 이럴 때 내게 위로가 되는 것은 도서관 맨 위칸에 꽂힌 페소아의 불안의 서.나는 그의 말을 열심히 필기한다. 기억을 잊을까 두려워서. 오늘도 한무더기의 텍스트 다발을 가지고 집에 돌아왔다. 이것 또한 내 노트에 묻혀 빛바래질 것이다. 후회한 것을 후회하는 마음처럼, 세상에 잘못 태어난 것 같다는 회한의 꽃다발처럼 영원히 두껍게 디자인한 노트 속에만 존재할 것이다.
작성 중일 겁니다.
한 곳에서 몇 해를 지나다 보니 말이야시간이라는 것이 가져오는 변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공간은 여전한데 발걸음은 달라지고영속할 것 같은 것들은 이제 외장하드에서만 존재할 때 말이야가끔 영원하지 않을 여러 곳으로 도피하고 싶다.나에게 영원한 동네라는 것은 없어.영원한 동네라는 것은 그때(memory)에 저장되었기 때문에 이때(present)에는 내 육신 밖에는 없어.이제는 내가 서 있는 이곳도 시간의 한 곳이라는 것을 알아서-리트머스 종이의 한 구간처럼- 정말 다른 구간에서 영원하지 않을 또 한 구간을 거치고 싶다는 욕망만이 자리할 뿐이야.나에게는 애처로운 깨달음-모든 장소는 나의 동네이다, 결코 영속될 수 없는, 결코 존재하는 나의 동네란 없듯이-과 나의 발가락 열 개만이 남아서가끔 영원하지 않을 다..
발은 발다워야 예쁜 것 같고,종아리는 종아리다워야 예쁜 것 같고, 다리 라인은 가끔 감춰두어도 좋아.허리 라인은 그 선이 조금 올라가거나아예 내려와서 굴곡이 보이는 것도 좋아.내가 생각할 땐,그때 우리 다웠기에 예뻤고,몇 해 전 나의 턱은 뼈에 딱 맞춰져서 예뻤고,근심과 걱정 없이 턱은 깨끗했지.내가 생각할 땐,현재도 그때처럼 예쁘기를 바라는데,글쎄 그건 해가 갈수록 어렵다.내 진심은 어디에 있으며나의 감각은 점점 둔해지는 것이 보여, 아주 슬픈 일이지(which is very, very sad).우리 생각해 보면,그때 먹었던 퀘벡식 어니언 수프같이 여기에서의 겨울이 참 따뜻하게 덥혀 있었지.아마도 돌아오지 않을 어느 지구(planet)상에서의영원히 묻혀질 기쁨.https://open.spotify.co..
작성 중
죽은 친구(1)의 이름(2)이 기억(3)나지 않는 순간(4)느낀다(5)생(6)에 너무 많은 주석들(7)이 붙었다고(8) (1) 그 친구를 사랑하진 않았지만 잠결에 마지막 전화를 못 받은 일이 부재중 통화를 볼 때면 누진 어지럼증으로 생에 대한 난독증으로 내내 씁쓸한 것이다(2) 신경쇠약에 시달린 이름을 몸에 맞지 않는 외투같이 걸치고 나는 이 세계의 계절들을 온통 앓으러 간다 이름은 출생처럼 자의와는 무관하니 친구라는 말 뒤에 접착할 별자리 이름 하나 구하는 중이다 (3) 우린 잊히기도 전에 까맣게 사라질 것이다 이 세상은 누군가의 꿈속일 뿐이니까(6) 우리 짧은 날도 우주에 붙는 각주에 불과하고 우연은 뺑소니처럼 삶을 완성하지만(7) 왜 그렇게 젖어 있는가, 너와 내가 가장 아름다웠던 때는(8) 네 시..
이유 없는 슬픔이 나를 불심검문하는 날이 있네 그런 때 마음은 쪽방에 갇힌 어둠을 가만 들여다보네 물결무늬로 흔들리는 눈동자 위를 떠가는 부유물 같은 기억들, 한때 절망은 일벌처럼 분주히 인간의 정원을 쏘다녔지만 벌집이 된 심연의 여왕벌은 까만 애벌레만을 생산했네 권태의 명수 무기력의 천재 우울의 가내수공업자 타락의 장인 불신의 성자 따위가 이 돌연변이의 별명이었네 그것은, 나는 내가 되는 공포...... 홀로 될 때의 유령...... 갈 데 없는 귀소본능만이 시나브로 흐려가는 영혼의 녹슨 엔진이었네 그렇게마음자리에 비탄의 괴뢰정권이 들어선 날이었네 나는 어둠 속을 심해어같이 헤엄치는 쪽방에서 마음눈의 색맹이 되어갔네 온몸이 물속에 잠겨야 사는 침수식물처럼, 모든 물은 익사의 빛깔을 띠고 있다는 자네의 ..
인간이 외로움을 느낄 때는 같은 상황을 겪었음에도 그 감정이 달랐을 때 온다. 비단 다를 수밖에 없지만 큰 폭으로 한 상황 안에서의 본인 처연함을 공유할 수 없을 때, 그 감정은 마음의 짐이 되어 지금 눈이 되어 나부끼는 낙엽처럼 떨어진다.애정도와는 관계없이 감정을 결코 공유할 수 없는 상태. 사랑하는 그녀와 그의 흥분을 해치고 싶지 않음에서 나오는 씁쓸한 짐덩이.외로움의 모양은 그렇게 무거운 스택들이다. 공유될 수 없는 수트 케이스 하나가 오늘도 방 문 앞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