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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사유思惟

interview #50yrs old.

Heewon Eom 2024. 1. 10. 23:45

25살 경에 빙판길에 넘어졌어요. 그때 피가 응고된 거죠. 사라질 줄 알았건만 어느 순간 통증이 사라지더군요. 그 순간 점으로 남을 거라는 걸 직감했어요. 사람이 구겨진 지하철 안 저녁이었어요. 슬펐어요.

응고된 피가 점으로 남는 것처럼 몸 곳곳에는 흔적이 있어요. 나도 모르는 순간 생겨버린 노란 멍과 어느 날 술을 진탕 마시고 넘어져 생긴 무릎의 상처. 살갗 안으로 내다 보이는 경우는 생전 처음이었어요. 이것 역시 지나온 날의 경험으로 사라질 거라 믿었건만 지금은 검붉은 또 다른 살이 되어버렸구요. 

늘 모든 걸 줄여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스스로 정해둔 정도를 넘어가는 순간 버겁다는 공포를 느끼는 버릇 때문이에요. 보통 이런 직감들은 유년 시절 형성된다고 하는데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노란 멍 같은 것들. 뇌에도 마음에도 그런 것들이 남아있나 봐요. 생애라는 것은 미리 알고 정해놓으신 신이 가끔 이유 없이 붙여놓은 사족의 연속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신은 그렇게 섬세하시지 않거든요. 멀어지는 친구들과 새로이 생기는 유희, 그리고 영원한 외로움. 그런 통증들과 엉겨 붙어서 생애 오십 주기. 살면서 한 번도 시간을 따라잡은 적 없는 것 같아요. 애당초 가능한 일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모든 설계들은 미지의 것이니까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앞으로는 몇 년이 남아있는지. 해라는 것은 존재하는 개념인지, 가상의 그래픽일 뿐인지. 그래도 맞아본 적 없는 새로운 시간이라는 개념을 축복하는 자리를 가지며 여기까지 살아왔네요. 시인을 동경하기도 했고 새벽 중에 음악 소리에 감탄하기도 했었고. 지금은 어느 순간 골아 떨어져 8시간을 자고 눈을 뜨면 이상한 안도감과 함께 행복하다고 느끼지만요. 시시해지는 것이 시간이라는 것일지도. 나는 선천적으로 충동에 약하기 때문에 자기 통제를 일종의 과제로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어기고 다짐하고 다시 어기는 것의 반복. 이 리피티션을 시간이라 부르는 것일지도. 

아프지 않은 것은 없지만 그다지 아픈 것도 아니다. 자주 쓰던 말입니다. 어느 순간 입에 손에 붙어서는 이런 말머리로 문단을 시작하는 버릇이 있어요. 언제 생겨버린 무슨 색의 멍인지는 미지수. 

25살에 생긴 흉터는 심장 모양이라 은근히 마음에 드는 거 있죠. 다른 건 차치하더라도 이것 만큼은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죠. 상처가 생기고 나흘 후 나의 친구와 통화하면서 생애 불변 가치에 대해 논했습니다. 돈이라고 부르던 것의 상대적 모멸감에 대하여. 그것만이 전부라고 상정했을 때 생기는 구멍같은 공허함에 대하여. 전 해에 들었던 교수의 말이 한 건 했지요. 죽을 때까지 배우는 것이 자신의 가치라던 그 선생. 무언갈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습득하는 지식의 휘발성과 성취 불균형에서 오는 자괴에 대하여. 그리고 결국 나는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배우지 않고서는 소기의 존재목적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깨달음으로의 귀결. 동조하던 친구가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지요.

25살에 피가 응고된 점은 여기 우수(右手) 새끼 마디에 그대로 있습죠. 아버지 손에 있던 점과 많이 닮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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