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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사유思惟

<모종의 고백>/ <사양>

Heewon Eom 2020. 8. 18. 09:27

<모종의 고백>


당신은 나를 신경도 안 쓰겠지요?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당신의 감촉이 다시금 느껴지는데 당신은 그것은 안중에도 없는 평탄한 날들을 보내고 계시겠지요?

이름 모를 인간이 혹여 당신일까 계속해서 신경을 거둘 수 없는 본인을 당신은 이해하지 못 하겠지요.

 

우리가 서로를 안 시간이 단 하루라고 나는 생각치 않아요.

그 전에도 나는 얼굴도 모르는 당신을 생각하고 떠올렸지요. 스멀스멀 나도 모르게 피어나는 사랑을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신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던 나의 그 무수한 시간들을 가볍게 만들고 싶지 않은 나의 이 마음을 아시나요.

 

나는 여전히 당신을 생각합니다. 가끔은 욕을 내뱉기도 하고 그러다 마침내 당신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단념하곤 합니다. 단념하는 다짐조차 당신에 대한 생각이라면 나의 뇌는 온통 당신일 거예요.

 

가증스러운 인간이라 한 나의 말에 혹여 상처를 입었을까,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다가 이내 대답도 없이 나는 알 길이 없는 당신에게 사죄의 마음을 품는 내가 너무 착한 사람 같아요. 그래서 당신은 나빠요.

나는 착하고 싶지 않은데 나를 착하게 만드는 당신은 나쁩니다.

 

오사무는 왜 나에게 있나요?

왜 당신이 접어 놓은 부분이 한 치의 어려움도 없이 나의 손에 닿을 수 있나요.

 

왜 당신은 같지 않나요.


취소할래요.
지난 말들을 철회하기로 다시 마음 먹었습니다. 당신에게 가증스럽다 한 저의 과거 발언을 후회하지도, 사죄하고 싶지도 않아졌습니다. 

 

그래

너는 그렇게

가증스러운

사람이야

안녕.

 

 

<사양>


가끔은 그대가 나에게 주었던 다자이 오사무가 나를 이토록 아프게 하려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가끔은 당신이 나에게 의도적으로 창을 겨누었나 하는 무시무시한 생각에 감히 패를 쳐들 수 없을 만큼 무력해져.

 

훗날에는 당신이 극적이리만치 자연스럽게도 당신의 분실된 사양을 알아채고는 뇌에 스치듯 나의 살결을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불쌍한 생각도 하곤 하네.

 

나를 한없이 불쌍하게 만드는 당신.

 

당신을 생각하면, 내가 견고히 쌓아오던 나의 찬란한 일상들이 나락으로 타 들어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왜일까? 당신의 색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나는 더더욱이 당신을 멀리하고파.

당신이 나의 뇌리에서 영영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어쩌면 근래의 나는 당신을 쉽게 지워버린 것이 아니라 감정을 직시하지 못하는 병에 걸렸었나 보다.

 

헌데, 나는 차라리 병자로 살래.

병에 걸려 내가 먼저 망자가 되더라도 나는 당신에게서 색을 이어받고 싶지가 않거든. 당신에게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거든.

 

그럼 안녕, 나는 안녕.

아아, 저기 저가는 태양아 영영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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