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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건 무뎌져 가는 것.

점차 익숙해져 가는 삶에서 새로움을 찾기 힘들어지고, 그런 일상들을 바라보는 속도를 점점 빨리 하는 것. 익숙해짐이 가진 무서운 점은 바로 여기에서 발생한다. 편해짐과 동시에 흐르는 시간 속에 반짝이는 것들을 스치고 만다. 처음이라 설레었던 것들, 처음이라 새롭고 아름다워 보였던 모든 것들이 너무도 당연시 되면서 작은 기쁨을 놓친다.

문득 단짝 친구에게 편지를 쓰고, 빼빼로 데이인 걸 뒤늦게 알아 채 편의점에 뛰어가 작은 과자 하나 사서 달려가는 것도, 새로운 환경에 입성한 친구를 위해 축하 파티를 왁자지껄 여는 것도. 줄 이어폰으로 밤새 옛 밴드 노래를 찾고 또 찾고, 작은 수첩에 매일 누군가를 위해 작은 기록을 소소하게 넣었던 것도.

세상 모든 처음 보는 것들이 아름다워, 그 아름다움을 단지 보낼 수 없어 했던 모든 낭만적 행위들을 점차 잃어간다는 것. 어쩌면 그것을 우리는 성숙해짐이라 부를 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 존경하는 선생님을 위해, 지나가는 행인을 위해 순수한 마음을 다했던 그 모든 아름다운 행위들을 단지 추억할 뿐이다. 어느 순간부터 익숙해진 산책로 라던지, 오랜 세월을 쌓은 똑같은 친구들, 심지어는 할머니의 나이가 되어 버린 아가였던 강아지까지도 반복되는 일상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비 내리는 밤의 낭만이나 세차게 부는 가을 바람에 두 팔 벌리고 뛰는 기쁨은 잊어버렸고, 100매 편지지를 한 장 한 장 뜯어 아무 내용도 아닌 말을 적어 친구에게 던져주던 그 연한 갈색 빛 예쁜 행동도 지금은 할 생각 조차 하지 않게 되었고, 강아지의 일 분 일 초를 사진으로 담던 사랑의 감정도 이젠 익숙해져 희미해졌다.

삶을 사랑하는 행위에 무뎌졌다고 밖에, 더 무엇으로 말할 수 있으랴.

그래서 우리는 한 번씩 우리 일상에 물을 줘야 한다. 반짝이는 것을 보는 눈을 잃어갈 때의 나를 한 번씩 자각하고는 집에 얼른 돌아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글을 써야 한다. 가끔은 일부러 시간을 내 명작이랄지 고전이랄지 하는 거창한 영화를 봐야 한다. 같은 영화를 본 그 누구와 함께 술 없이 침 튀어가며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또 가끔은 친구에게 깜짝 선물을 준비하는 삶의 이벤트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무뎌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무수한 세상의 새로운 것들을, 그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아나서야 한다.

지난 아름다움을 추억하며 새로운 세상의 기쁨을 온전히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우리가 사는 이유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만이 내가 내 삶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임을, 이 세상과 가장 가까이 작용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순수한 눈과 귀로 모든 것을 만지며 살아있는 것들을 그대로 보고 그대로 일기장에 쓰는 사람이고 싶다.

훗날 중년이 되어 이제 막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젊은이들의 반짝이는 눈을 길에서 마주쳤을 때, 똑같은 눈으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잃지 않는 아름다운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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