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book

최애, 타오르다

Heewon Eom 2021. 8. 1. 21:29

 

 자신이 몸담고 있는 시대를 어떤 시대라 명확히 정의할 수 있는 구성원이 있을까. 그러니까 - 역사가 되기 전 현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위인의 존재 가능성을 묻는 것이다.

 나또한 그런 위인은 아니라서, 그리고 또 흔히 말하는 MZ세대로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특성을 그리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니어서, 내가 속한 세대에 어떤 명명을 하려 노력한 적 없다.

 굳이 전세대와의 차이점을 말하자면 비대면 인간관계의 진화 정도가 가장 클텐데, 변화한 인간관계의 양태에서 낙오하는 사람이나, 전통적인 소통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머지 적응하지 못하고, 이 세계의 이방인이 된 것만 같은 불안감 따위가 굳이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나또한 인터넷 세계에서 인간관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상당 부분 그 세계 안에서 의지하고 있는 관계들이 있다. 그곳에 존재하는 나의 모습과 현실의 눈으로 보는 나의 모습에 어떤 단면적인 괴리가 느껴질 때면 마음의 불편함을 안고는 며칠간 앓기도 했다. 허나, 이중세계를 살아가는 것은 현대인으로서 불가피한 것임을 깨달았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 존재에 대한 괴리를 조금씩 안고 살아간다는 어느 이웃의 말을 듣고는 어떤 불편함을 '단념' 비슷한 것으로 짓누르고 애써 즐기려는 편이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아카리인가, 싶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사미 린의 이 책은 감히 용감하게 시대를 정의하려하는 역사서라 칭하고 싶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우리 시대의 역사서' 즈음으로 말이다.

"휴대폰이나 텔레비전 화면에는 혹은 무대와 객석에는 그 간격만큼의 다정함이 있다. 상대와 대화하느라 거리가 가까워지지도 않고 내가 뭔가 저질러서 관계가 무너지지도 않는, 일정한 간격이 있는 곳에서 누군가의 존재를 끝없이 느끼는 것이 평온함을 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최애를 응원할 때, 나라는 모든 것을 걸고서 빠져들 때, 일방적이라도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충족된다."

"어쨌든 나는 몸을 깎아 쏟아 붓는 수밖에 없다. 최애는 내가 살기 위한 수단이었다. 생업이었다."

"그래도 반쯤 픽션인 나로 참여하는 세계는 따스했다."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 자체가 되어버린 인간관계 사이에서 우리 세대는 일방적인 사랑이라는 새로운 모양의 위로를 구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애의 존재는 곧 아카리의 존재 이유인 것처럼, 우리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세상에 적응하려는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전후 세대가 데카당스 문학 따위를 통해 자기 세대를 위로하려 했던 것처럼 우사미 린은 우리에게 새로운 자기 위로의 방식을 내던지고 있는 것 아닐까.

 누군가가 춤을 추는 영상에서 보이는 다리 근육을 보며 그의 심리를 추측해보고, 최애와 자신을 동일화 시키며, 여느 유망한 연구원 못지 않은 열정으로 한 대상을 기록하고 해석하는, 그런 새로운 방식의 사랑을, 우리는 경험한 적 없다고 하여 비난할 자격 없는 것이다. 물론 나또한 여전히, 전통적인 사랑에 얽히지 않는 그 종류의 사랑을 무어라 부를지 모르겠다. 존재를 사랑하는 것 자체로 행복하고, 그것만으로 행복이 성립하는 것은 어떤 방식의 사랑일까. 사랑, 일까? 사랑이 아니라면, 무어라 정의할 수 있을까.

 그에 대한 고민은 이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계속하여 과제로서 안고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나는 아카리의, 아카리와 동화되는 수많은 내 친구들의 마음을 가장 단순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다.


 비로소 2021년에 문학책에 '인스타그램 라이브', '최애', '이모티콘' 같은 용어가 등장한다. 이런 주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에 아쿠타가와 상을 수여하는 이 세상은 과연 어떤 것에 가치를 두고 있으며, 어떤 모양의 시대인지 생각해 볼 거리를 주는 작품이다. 그리고는 생각의 끝에 비로소 자기의문에 귀결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어떤 류의 세대이며, 나는 누구인가.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 완전무결이 가능하긴 해?  (0) 2021.03.30
1984  (0) 2020.08.11
生의 이면  (0) 2017.01.01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5/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