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간사유思惟

떡밥회수

Heewon Eom 2021. 11. 6. 00:58

늘상 입이 방정이라 뒷일 생각 안 하고 뱉는 말이 많다. 과거에 뿌려놓은 것들이 많아서 계속해서 천천히 줍고 있다. 주워서 그이들 입에 도로 넣어주는 게 목표다. 2년 만에 금속공예를 했다. 반지 만들어준다고 여기저기에 던져 놓은 게 많아서, 일상의 지루함도 견뎌 볼 겸하여 어제부터 밤 시간에는 왁스만 깎는다. 공예과 시절이 새록새록 오른다. 그리고 왜 관뒀는지도 다시 느껴진다. 열중해서 시간은 휘리릭 지나가는데 정신 차리고 보면 작고 퍼런 화학 덩어리 하나와 뻐근한 어깨만 남아 있다. 뭘 하든 간에 비등비등한 정도로 재밌고 또 힘이 든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그래서 나 같은 타고난 뺀질이들은 카빙 했다가 책 읽었다가 교과서도 좀 보다가 하고, 또 적당한 때에 술 마시며 사람들 만나면서 일의 진척을 넓혀가는 수밖에 없다. 여하튼 정신 사납게 전부 벌여놓고 느긋하게 수거하는 게 일생의 일이다.

돌이켜보면 아주 작을 때부터 어디 하나에 정착하지 못했다. 학원도 장난감도 몇 달 지나면 바꿔달라고 하는 딸놈 때문에 엄마는 나중에 질릴대로 질렸다고 한다. 개중에 수년 이상을 한 것이 미술이 되어 어찌저찌 미술 고등교육기관에 들어갔다. 그때까지도 씨를 뿌렸으면 추수는 당연지사 따라오는 시퀀스임을 깨닫지 못했다. 미술대학에 들어는 왔으나 재미를 느낄만 하면 질리고 지치고. 주위 둘러보니 더 길게 유희 느끼는 동료들이 많다. 내가 했던 수년 간의 그림도 그 끝에 무언갈 얻어 와야하는 농사다. 근데 이거 며칠 뒤에 추수해야하는거며 또 볕은 어디에 둬야 더 잘 받는지 영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차애책인 법 공부를 택했다. 법이라고 하면 당연지사 만나는 인간마다 나에게 법관 될거냐, 변호사 될거냐, 로스쿨 가는거냐 묻는다. 비법인들도 다 아는 터널이 있으니 나도 선택한 이유 있지만, 지금에야 와보니 이것도 농사인 건 매한가지다. 뭐든 농사다. 결국 뭔가 이루고자 하는 인간은 어쩔 수 없는 농부로 계속 뿌리고 회수하는 삶을 사는 거다. 에잇. 이왕 이렇게 된 거 먹고 싶은 씨 다 뿌려보고 천천히 회수하는 과정 자체를 시간이라 부르련다. 쌀밥 먹는다고 뭐 되는 거 있나. 열매 보면 당장에 죽을 것도 아니고.

좌우당간 나는 오늘 지난 번 뱉은 씨 하나 도로 담았다.
그게 전부다.

'일간사유思惟'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천직은 무얼까나  (0) 2021.11.16
친구에 대한 생각  (0) 2021.11.11
그 무엇도 아닌 존재의 처연함  (0) 2021.11.04
0915느낌  (1) 2021.09.16
15일 꿈  (1) 2021.09.15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5/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